1. 나에게도 탈모가 찾아왔다
한때 나는 탈모가 ‘남 얘기’라고 생각했다. TV 광고 속에서 중년 남성들이 한숨 쉬며 탈모 샴푸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저 나이까지도 괜찮겠지”라는 막연한 자신감에 젖어 있었다. 그런데 서른을 넘기자 이상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머리를 감을 때마다 배수구에 쌓이는 머리카락이 눈에 띄게 늘었고, 머리를 말릴 때수건에 붙은 머리카락 숫자도 심상치 않았다. 처음엔 스트레스 때문일 거라 생각하며 넘겼다. 하지만 어느 날 거울을 들여다보며 정수리를 봤을 때, 분명 예전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머리숱이 드문드문해지고 두피가 눈에 띄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충격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집에 있는 거울, 엘리베이터 안 거울, 카페 화장실의 거울 등 온갖 반사면을 의식하게 됐다. 정수리를 가리기 위해 머리 스타일을 바꾸고, 드라이기나 왁스 사용도 더 신경 쓰게 됐다. 친구와 찍은 단체 사진 속에서 나 혼자 머리숱이 적어 보인다는 걸 느끼고는, SNS에 올릴 마음조차 사라졌다. 탈모가 단순히 외적인 변화가 아니라, 내 일상과 감정에 깊숙이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2. 감추는 삶은 오히려 더 큰 스트레스였다
탈모를 인정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눈치, 사회의 편견, 스스로 느끼는 열등감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처음엔 무조건 감추려고 했다. 모자를 수시로 쓰고 다녔고, 일부러 밝은 조명 아래에 서지 않으려고 피하기도 했다. 여름에도 땀을 참아가며 모자를 벗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방식은 오히려 더 큰 스트레스를 낳았다. 외모를 감추기 위해 애쓰다 보니 성격도 점점 소극적으로 변했고, 사람들과의 만남도 줄어들었다.
한동안은 민간요법에 집착하기도 했다. 인터넷에서 본 대로 생강, 마늘즙, 심지어 맥주로 두피 마사지를 해보기도 했다. 비싼 탈모 샴푸, 영양제도 빠짐없이 구매했지만 정작 중요한 두피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효과가 있을 것 같다는 말에 혹해 가짜 제품까지 샀던 적도 있다. 탈모를 인정하지 않고 감추고 피하는 동안, 내 자신감은 바닥을 쳤다. 감추는 삶은 결국 나를 점점 더 외롭게 만들었고, 나는 더 이상 이 상태를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3. 용기를 내어 병원을 찾다
어느 날,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탈모 전문 병원을 찾았다. 병원 문을 열기 전까지 한참을 망설였지만, 상담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는 왠지 모를 후련함이 밀려왔다. 두피 검사를 통해 유전적 요인과 스트레스, 피지 과다 분비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에 맞는 치료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약물 복용과 두피 전용 샴푸 사용, 정기적인 두피 관리와 함께 생활 습관도 조금씩 바꿨다.
과일과 채소 중심의 식단으로 바꾸고, 매일 일정한 시간에 자고 일어나며 수면 패턴을 안정시켰다. 운동을 시작해 땀을 흘리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면서 몸도 가벼워졌다.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마음가짐이었다. “나는 괜찮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고, 탈모를 ‘극복할 수 있는 문제’로 바라보게 되었다. 몇 달 후, 정수리의 빈 부분이 눈에 띄게 개선됐고 빠지는 머리카락 수도 현저히 줄었다. 비로소 감추는 삶에서 벗어나, 당당한 나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4. 탈모는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
탈모는 외모의 변화일 뿐 아니라,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전에는 단순히 겉모습만을 신경 썼지만, 이제는 나의 건강 전반을 바라보게 되었다. 지금도 탈모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지만, 나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 탈모를 계기로 삶의 습관을 바꾸고, 스스로를 더 아끼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탈모가 있다는 사실을 더 이상 숨기지 않게 되면서 사람들과의 관계도 훨씬 편해졌다. 당당함은 상대방에게도 긍정적인 인상을 주며, 오히려 더 진솔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 요즘은 나처럼 탈모로 고민하는 친구들에게 먼저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빨리 병원 가보는 게 제일 좋다. 혼자 끙끙 앓지 말라”라고 말해준다.
탈모는 약점이 아니라, 변화의 시작점이다. 감추기보다는 관리하고, 두려워하기보다는 마주할 때 비로소 그 상황을 바꿔낼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그리고 더 감추기 전에, 당신도 용기를 내길 바란다. 탈모는 끝이 아니라 당신 자신을 되찾는 출발선이 될 수 있다."